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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도쿄올림픽과 동북아 평화

정 대진 (아주대학교 아주통일연구소 연구교수)

 

고대올림픽은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창기에는 제우스 신을 숭배하는 작은 지역 축제로 출발했다. 이후 참가도시와 종목이 늘어나면서 기원전 5세기에는 그리스 전체의 행사로 확대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리스 도시 국가 간의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아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국가들은 올림픽 전후로는 전투를 중지하자는 결의를 했다. 신성한 휴전을 의미하는 에케케이리아(Ekecheiria) 의 시작이다.

에케케이리아 정신은 1990년대에 부활했다. 유엔은 199310월 올림픽 기간 동안 모든 분쟁을 중지하자는 총회 결의를 내놓았다. 1990년대 초 보스니아 내전에서 인종청소와 같은 참사가 벌어지자 유엔 차원에서 내놓은 처방 중의 하나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는 올림픽 휴전이 지켜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19942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 대한 세르비아계의 대규모 폭격이 감행되면서 그 빛이 바랬다.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핵사찰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이라크가 전쟁 일보 직전으로 치닫는 긴장감 속에서 치러졌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 전날에는 러시아와 조지아 간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유엔 차원에서 올림픽 휴전 결의를 내놓으면서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분쟁이 잠시라도 멈출 수 있기를 희망했다.

한반도에도 몇 해 전 그런 희망과 긴장의 순간이 동시에 전개된 적이 있었다. 20179월 제72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으로 조롱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이에 질세라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을 늙다리 미치광이(dotard)로 비난하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해 하반기에 미국은 한반도에 전략자산을 전개하기도 했고, 같은 해 1129일 북한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는 등 전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유엔은 제72차 총회 기간 중인 그해 11193개 회원국 중 157개국의 공동제안을 통해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평창동계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과적으로는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 휴전 정신이 빛을 발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 대표단이 참가하고 남북이 특사를 교환하는 한편 남북은 4월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2월 올림픽 휴전에 이은 평화 분위기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이어서 6.12북미정상회담과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숨가쁘게 이어지면서 2018년은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한껏 고조된 해로 기록되었다.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 자체가 독립변수로서 2018년의 남북, 북미 간 평화를 전면적으로 이끌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평창 동계올림픽과 에케케이리아 정신은 2018년 한반도 평화를 일군 중대한 매개변수로 작용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가 있어 대화와 소통을 할 수 있는 명분과 공간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2021 도쿄올림픽과 에케케이리아 어게인

때마침 2018년 당시는 남북미 모두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대립을 타파하고 평화적 현상전환을 추진하는 방향에서 정책적 공통분모가 있었다. 북한은 2017년까지 이어진 6차례의 핵실험과 수많은 미사일 시험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국방력을 확보하고 2018420일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선포하며 국가의 정책 방향을 공식 전환했다.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제재완화, 북미관계 개선을 이루고 경제력 건설과 강성국가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었다.

2017년도에 나란히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문재인 정부는 두 지도자의 정치적 성향, 개인적 스타일과 리더십 차이에도 불구하고 탑다운(top-down) 정상외교를 통한 한반도의 평화적 현상전환을 추진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개인의 업적을 부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한반도의 현상전환을 주도하는데 큰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 및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에 대해 정부 출범 초기부터 강한 의지를 피력했고 현상전환을 위한 일관된 노력을 했다. 2018년은 이런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20192월의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 합의까지 이어진 한반도 현상전환의 한 해였다.

이 한반도 현상전환의 분위기는 2019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합의 결렬로 정지상태에 들어갔다. 북한은 미국에게 비핵화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2019년 연말까지 가져올 것을 요구하며 대남‧대미단절의 폐쇄적 현상유지 기조에 들어갔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의 기조를 유지하며 북한이 바라는 새로운 계산법 제시 없이 2019년 연말까지 시간을 보냈다. 오로지 한국만이 신한반도체제 구상 발표, 동북아철도공동체 제안 등을 하며 한반도의 평화적 현상전환을 위한 고군분투를 했다. 한반도에 현상유지(북한,미국) 대 현상전환(한국) 국면이 펼쳐지며 남북미 관계가 정체기를 형성했다.

이 정체기는 2020년에도 이어졌다. 코로나19의 엄습으로 북한은 스스로 밀봉에 가까운 비상방역체제에 들어갔고, 미국도 국내 코로나 상황관리와 대선 국면을 맞아 한반도 현상전환을 위한 별도의 여력을 쓸 수 없었다. 한국만이 한반도 생명공동체와 남북한 방역협력 등을 제안하며 현상전환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대 현상전환 정체 국면은 2021년이 되면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다. 2021년 상반기에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화되고 상황이 나아지면 한반도에서의 정체 국면도 풀릴 것인가? 남북미 모두 다시 현상전환을 위한 정책적 소요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상황 반전이 예상된다. 북한은 18차 당대회에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2018년 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추인하고, 경제발전5개년 계획을 비롯한 각종 정책을 통해 경제력 건설에 매진할 것이다. 자력갱생과 정면돌파의 기조는 유지하겠지만 근본적인 경제개발과 발전을 위해 다시 북미대화와 제재완화를 위한 외교적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바이든 신 행정부 역시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하며 오바마3기가 될 수만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던 2009년과는 달리 북한은 핵능력국가(nuclear capable state) 수준에 이르렀다. 미국의 비확산과 세계전략 구도에서 그냥 둘 수 없는 상황이다. 북미 양자대화보다는 동맹국 및 우방국 협조를 통한 다자대화, 실무협상을 중시하는 바틈업(bottom-up) 대화방식을 시도하겠지만 원칙에 입각하면서도 실용적으로 유연성을 발휘하며 북한 비핵화 목표에 다가갈 것이다. 한국은 일관되게 한반도 현상전환 기조를 유지하며 2021년에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선순환 및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 구도 하에서 한반도는 현상전환(2018)→현상유지 대 현상전환(2019~2020)→현상전환(2021)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7월의 도쿄올림픽은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남북미가 동북아에서 개최되는 도쿄올림픽을 명분으로 에케케이리라 정신을 발휘하며 도쿄에서 만남과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면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도쿄 하계올림픽도 평화의 상징이자 디딤돌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19 종식, 3월의 한미연합군사훈련, 미국의 대북정책 재검토 기간과 이 기간 동안 필요한 북한의 전략적 인내와 같은 암초와 변수들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 휴전과 평화라는 명분과 목표를 정해두면 다 같이 2021년 상반기에 암초와 변수들을 넘어가기에 조금은 더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도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가오는 도쿄올림픽이 전 세계 코로나19 종식의 선언장이자 지구촌 축제의 장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새로운 출발선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원한다. 에케케이리아 어게인(Ekecheiria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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