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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

정일영(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 중 하나이다. 한반도는 새로운 아시아의 시대를 주도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로 대치하고 있는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이다. 이 글은 한반도와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국제정치의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찰해 보려 한다.

 

1. 왜 한반도의 불안정은 지속되고 있는가?

 

왜 한반도의 불안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가?

이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논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우리가 한반도에서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의 원인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해결책 또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고대로부터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경학적 요충지로 여겨져 왔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대륙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해양의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 왔다. 다만, 한반도가 늘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다. 676년 통일신라가 한반도에서 통일을 달성한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쳐 1910년 대한제국이 몰락할 때까지, 1230년 동안 한반도는 통일된 국가로 동북아의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렇다면, 지금 한반도의 불안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우리는 역사의 흔적으로부터 두 가지 사건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해방으로부터 시작되어 한국전쟁으로 고착화된 한반도의 분단이며, 다른 하나는 1990년대 초반 미·소 냉전의 해체가 가져온 한반도의 변화이다.

 

첫 번째 사건은 한반도의 분단이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한민족은 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미국과 소련의 분할점령을 맞이하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양분한 미·소의 분할점령은 한반도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 건설로 귀결되었다. 또한, 북조선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분단체제가 고착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기할 것은, 한국전쟁이 휴전의 형태로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이란 형태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북조선은 휴전으로 끝난 한국전쟁을 승리한 전쟁으로 신화화하였다. 그들은 전쟁이 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막아낸 김일성을 민족의 영웅으로 우상화하였다.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냉전체제의 최전선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반도에 등장한 분단체제는 한··일 남방 3국과 북··중의 북방 3국이 경쟁하며 안보의 딜레마 상황을 가중시켜 왔다.

 

두 번째 역사적 사건은 냉전의 해체가 가져온 한반도의 변화이다. 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은 미소 냉전체제를 해체해 나갔다. 한반도에서도 한국이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펼치며 소련(1990), 중국(1992)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게 된다.

 

·소 냉전의 해체가 가져온 봄바람은 남북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 1991 12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고 이듬해 3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성명>이 발효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 즉 북미, 북일 관계의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반도는 탈냉전 시대에 유일한 냉전의 섬으로 남게 되었다. 이와 함께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갈등 구조가 새롭게 등장하고 북한이 핵 개발을 추진하면서 한반도의 불안정은 현재에 이르고 있다.

 

 

2. 우리는 왜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했는가?

 

왜 우리는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우리는 북한이 핵을 개발한 사실로 북한을 악마화하기에 앞서, 북한이 핵을 개발하게된 원인을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반 미·소 냉전의 해체가 가져온 훈풍은 한반도에서 분단체제를 해소하는데 실패했다. 한국이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하고, 특히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조선은 미국, 일본과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 동북아에서 한--일과 북--중의 대결 구도가 불완전하게 해체되며 북한은 고립되고 말았다. 결국, 북조선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개발 등 비대칭 안보전략을 추구함으로써 안보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1992 3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성명>이 발효된 이후, 28년간 진행된 북조선 비핵화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왜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지 못했을까?

 

첫 번째로, 상호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협상은 수많은 합의서를 만들어 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북조선은 체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신뢰의 증거로 북미, 북일 간 국교 정상화를 요구해 왔다. 미국 또한 북조선을 신뢰할 수 없으며 신뢰의 증거로 북한의 핵무기와 물질, 핵 프로그램의 리스트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물론, 북핵 협상 과정에서 당사국 간 신뢰 회복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8 6자회담이 결렬되기 전, 북조선은 자신들의 핵 리스트를 중국에 제출하였고, 미국은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통해 연락사무소 설치와 외교관계 회복을 약속한 바 있다. 다만, 북한의 핵 리스트는 미국의 신뢰를 회복하기에 부족했고, 북한에 미국의 연락사무소는 개설되지 않았다. 서로를 믿지 못한 양측은 먼저 행동할 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구체적인 합의 이행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두 번째로, 대북제재를 통해 북조선을 굴복시키거나, 북한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에 발생한 북조선의 식량난과 경제위기는 그들의 붕괴가 가까워졌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또한, 대북 경제제재를 강화함으로써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강경론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위기와 대북제재를 견뎌내며 2017 6차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완성하였다. 또한, 같은 해 12 ICBM급 장거리 미사일(화성-15)을 발사하며 운반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다양한 무역제재를 이미 받아왔으며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북조선붕괴론이나 제재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단절된 형태로 진행된 북핵 협상은 새로운 협상으로 대체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지금까지 북핵 협상은 양자(북미, 남북) 혹은 다자(6) 협상의 형태로 진행되어왔다. 1992년 남북협상과 1994년 북미협상은 6자회담으로 확대되었다가 2018년 다시 북미협상으로 회귀하였다. 이들 회담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1)북한의 비핵화 조치, 2)북미, 북일의 관계정상화, 3)대북 경제지원 방안을 중심으로 크게 변동되지 않은 채 반복되어 왔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과 한국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정부의 협상 전략을 이어가기보다는 새로운 협상을 통해 또 다른 합의를 재생산하는 과정이 반복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 개발은 진전되었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또한 강화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북한은 핵 개발에 성공하였다.

 

 

3. 한반도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사회는 북조선을 핵보유국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은 핵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반도를 비핵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해보자. 북조선은 어떤 상황에서 핵을 포기할 것인가? 먼저, 무력을 사용해 핵시설을 파괴하고 핵무기를 폐기하는 방안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방법이 한반도, 혹은 동북아에서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그 대가는 엄청날 것이란 점이다. 무력을 통한 모험적인 비핵화 전략은 공동의 파멸을 의미하기에 선택지가 될 수 없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핵을 가진 북조선과 협상해야 한다. 지금까지 핵을 보유한 국가가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상황에서 핵을 포기한 사례는 없다. 핵을 보유한 북조선을 악마화하는 것과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협상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북조선은 핵을 포기할 것인가?

 

북조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그들은 국가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며 핵을 개발했다. , 핵이 없어도 안전하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핵을 가지므로 해서 안보위기가 강화된다면 그들은 핵을 포기할 것이다. 이 양자의 시각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다. 북조선이 핵을 보유하는 것보다, 핵을 보유하지 않을 때 더 안전하고 그들의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면 그들은 핵을 포기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에서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의 구조적 원인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결시키고 냉전의 남은 잔재, 즉 북미, 북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내정치에서도 예민한 주제다. 한반도에서 분단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고착화 되었고 군사안보체제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2016년 이후로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북조선을 굴복시키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경제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조선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경제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북조선의 대외무역에서 95%를 차지하는 대중 무역이 중단된 것은 대북제재보다 더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북조선의 경제위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대북제재를 강화한다면, 그들은 핵을 포기할 것인가? 분명 지금의 경제위기는 김정은 정권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며 국내 경제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체제위기로 확대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경제위기 자체로 그들이 핵을 포기할 것이란 생각은 비합리적이다. 그들의 시각에서, 김정은 체제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핵을 포기하는 것은, 체제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위기에 처해있다. 지금이야말로 협상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은 위기에 처해있다. 그들은 조건이 맞는다면, 즉 핵을 포기하는 것이 그들의 체제와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면 협상에 나설 것이다.

 

새로운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 북일관계 정상화, 북한의 경제 재건을 포함한 포괄적 패키지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상호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한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북한이 2018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영변 핵시설의 폐기를 이행한다면 상호 신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분단체제를 해체하기 위한 초기 조치로 북미 간 종전선언을 활용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비핵화 과정에서 북조선의 경제회복과 국제사회로의 편입을 지원해 나가야 한다. 북조선은 동북아에 남아 있는 유일한 미개척 지역이다. 북조선이 국제사회에 편입될 수 있다면, 동북아는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일부 완화하는 대신 스냅백(snapback)의 방식으로 통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협상을 준비하고 행동해야 한다. 북조선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한반도의 불안정이 지속되는 한 동북아의 어떤 나라도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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